반응형 역사17 태국-캄보디아 전쟁 진짜 이유! 국경의 포화와 정치적 역학: 태국-캄보디아 전쟁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프리아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을 둘러싼 밀림에서부터 타모안톰(Ta Moan Thom) 인근 국경 마을까지, 2025년 들어 태국-캄보디아 전쟁이 다시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 분쟁을 추적하는 전쟁 블로거로서 저는 전투가 주는 경이와 공포를 동시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7월 24일, 분쟁 지역은 중화기 포격과 로켓탄으로 뒤흔들렸고, 태국은 F-16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켜 캄보디아 진지를 폭격하였습니다. 태국 보건부는 첫 사흘 동안 민간인 19명이 사망했으며, 그중에는 8세 어린이도 포함된다고 밝혔습니다. 캄보디아 쪽은 최소 13명의 사망자를 보고했습니다. 또한 13만 8천 명 이상의 태국 민간인과 2만여 명의 캄보디아인이 집을 떠.. 2025. 7. 30. 김만덕 우리나라 최대의 휴양지는 아름다움이 숨쉬는 섬, 제주도 입니다. 모든 것들이 생기 넘칠 것만 같은 아름다운 이곳이지만, 이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 당시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사라졌고, 모든 것은 천천히 죽어갔다. 무려 제주도 사람의 1/3이 차가운 주검이 되었고, 시체 썩는 냄새는 온 섬을 뒤덮었다. 1795년에 제주도에 들이 닥친 살인적이 가뭄이 만들어 냈던 전대미문의 아사 사건이었다. 아사란 굶어 죽는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대로라면 제주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사라질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당시 나라의 통치자였던 정조는 급히 어명을 재려, 제주도 백성을 구제할 구휼미를 보낸다. 하지만 쌀을 실은 대부분으 배가 제주도에 채 닿.. 2017. 2. 5. 안중근 오늘의 이야기는 안중근 선생님에 대해서 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안중근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사죄한다. 이를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1939년 경성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공양하는 사찰에 찾아와 안주근의 행적을 사죄하는 의문의 조선인 남자가 있었다. 원래는 을미사변 때 순국한 조선인들을 모시기 위한 재단이었으나 일제가 개조하여 이토 히로부미를 공양하는 사찰로 만들어 버린 곳이 바로 서울의 박문사이다. 그의 일은 곧 당시 신문에 대서 특보된다. 1939년 10월 16일 경성일보에서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화 앞에서 안중근을 대신하여 온 마음을 다해 사죄했다라고 보도하였다. 그리고 같은 신문에 실렸던 또 다른 기사 하나에는 그는 사찰 방문 후 이토의 아들을 찾아가 그에게 안중근의 행도을 깊이 사.. 2017. 2. 4. 인천상륙작전 자네들의 목숨은 그 누구도 보장해줄 수 없을 것이다.부디 그대들에게 신의 가호가 함꼐하길 바란다. 1950년 전쟁 발발 2개월이 지난 8월 어느 날, 서해의 섬 영흥도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이 섬의 백사장으로 의문의 사내 17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진행된 그들의 상륙이었다.섬에 발을 내딛자 마자 섬 주변을 샅샅이 살피고, 밀물과 썰물 등 마닷물의 움직임을 정밀히 기록하는가 하면 섬과 바다를 넘나들며 의심스러운 행보를 보인 그들은 수상한 행보를 계속하였다. 무려 한달 간이나 계속된 그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우리가 잊어버린 그날의 영웅들에 대해서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1950년 9월 15일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꿔 놓았던 맥아더 사령관의 인천상륙작전은 모두가 반대했.. 2017. 2. 3. 허준 허준에 대해서 대화형식으로 글을 작성해 보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 와 허준 영감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허준 영감님 : 본인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렇게 먼 곳에서까지 찾아 오고 그러시나.글쓴이 : 헐, 영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혹시 그 동의보감은 미래에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허준 영감님 : 이 책이 그렇게 인기가 많고 알려지게되서 뿌듯하구만 그려.글쓴이 : 그 뿐만이 아니고 허준 영감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희들은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바로 드라마 허준 덕분입니다.허준 영감님 : 오 그렇다면 설마 내가 주인공인 판소리였단 말이오?글쓴이 : 음, 뭐 비슷한 거긴 합니다.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저희는 허준 영감님의 인생을 보고 정말 많은 것을 느꼈습니.. 2017. 2. 2. 노근리 노근리 학살 사건에 대해서 적어보겠다. 그날, 왼쪽 눈알이 빠졌다. 얼굴을 더이상 보고 싶지 않아서 이제는 겨울도 보지 않는다.그날, 얼굴의 반이 없어졌다. 이제 외출은 꿈도 못 꾼다.그날, 한 아기의 아버지는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죽여야만 했다.그리고 그날,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던 엄마도 가슴이 뚫린 채로 죽고 말았다. 1950년 7월 그날, 그곳에서 300여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다.자식을 죽인 아버지, 아이에게 젖을 먹이던 어머니, 어린 아이, 노인들까지 모두 다 죽었다.누군가는 감추었고, 누군가는 잊었던 그날의 기억이다.이것은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피란 중 북한군에게 민간인이 몰살당한 안타까운 사건이라고만 알려졌던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은 이후 우리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 2017. 1. 25. 이전 1 2 3 다음 반응형